골목의 신호, 잠시 멈춤

짙은 남청과 주황이 맞부딪히는 밤의 골목. 오래된 소형차 보닛 위에 한 인물이 다리를 포개고 앉아 눈을 감는다.
머리 위로 전신주와 전선이 얽히고, 벽면에는 원·삼각·사각의 아이콘이 신호등처럼 떠 있다.
움직이기 위해 만들어진 차 위에서의 정지—도시는 여전히 달리지만, 인물은 속도를 거두어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다.

평면적인 색면, 두꺼운 외곽선, 제한된 팔레트가 스크린프린트 포스터 같은 감각을 만든다.
차체의 수평과 전선의 곡선, 아이콘의 기하가 간결한 구도를 이루고, 청록/남색의 차가움과 오렌지의 따뜻함이 ‘밤의 공기와 몸의 온기’를 대비시킨다.
빛과 그림자의 극적 처리 대신 색의 덩어리로 시간과 정서를 압축하는 방식은, 장면을 기억의 스틸컷처럼 고정한다.

이 작품은 ‘정지’의 권리를 이야기한다.
출발·우회·정지로 읽히는 기호들 사이에서, 인물은 아무 표정 없이 앉아 있다—강요되는 선택 대신 잠시의 무중력. 복고적 오브제들은 특정 시대의 향수를 불러오지만, 메시지는 현재형이다. 달려가는 도시에서 잠깐 내려앉아, 어디로 갈지 스스로 정할 수 있는 마음의 페달을 확인하라고.